오래전 영국의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.
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, 런던 교외의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단의 사람들이 그 집 주인에게 우산을 하나만 빌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.
주인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이 쓰던 우산 중에서 다 부서진 낡은 우산 하나를 쓰도록 내어 주었습니다. 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워 주고 그곳을 떠났습니다.
다음 날 어떤 사람이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 우산을 다시 가져왔는데, 그 편지에는 “참 감사합니다.” 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어제 우산을 빌렸던 여자의 싸인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. 그 싸인은 “엘리자베서 여왕”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. 농부가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겠습니까?
“그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분을 영접했을 텐데, 그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......!”
런던 교외의 허름한 농가에서 있었던 이 농부의 실수, 즉 여왕을 여왕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던 팔레스틴 땅에서도 일어났습니다.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(主)이신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셨건만,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분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상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고 있습니다.
헤롯, 대제사장, 서기관들, 여관주인....
혹시 당신은 이 여관 주인처럼 주님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아두고도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 때문에 창조주 되신 주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? 그래서 이 크리스마스가 별 의미가 없는 하나의 휴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까?
(요1:11) “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.”
(요1:12) 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,”
그분이 우리의 구주입니다. 그분이 나를 구원하신 생명의 주님이십니다. 그분이 보배로운 피를 흘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. 살아계신 그 주님 때문에 내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. 영생의 감격이 있습니다. 이 깊은 감사와 감격 속에 주님을 향한 찬양과 환희를 터뜨리는 성탄이 되게 하옵소서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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